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진 박 (문단 편집) === 한국 활동 시작 === 1996년 줄리아드 스쿨을 졸업하고 당시 뉴욕 최대 매니지먼트사인 스카시 스켓과의 계약을 거부한 채 한국의 [[열린음악회]] 출연을 계기로 국내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너바나]], [[재니스 조플린]], 윈튼 마살리스, [[지미 헨드릭스]] 등의 영향을 받아 정통 클래식이 아닌 [[얼터너티브 록]], [[재즈]], [[대중음악|팝]], 펑크,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음악을 하였고, 국내 최초로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이용한 연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IMF 이후에 만들어진 당대 인기가수 총집결곡 '''[[하나되어]]'''에 유진 박의 독주장면이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배정되기도 했다.[* 전형적인 [[We Are the World]]식 곡이어서 한 명에게 배정된 것이 짧으면 한 소절, 길면 2, 3소절인 곡이다. 이 앨범에는 유진 박의 연주곡도 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날리던 홍콩 스타 [[여명(홍콩)|여명]]의 'Sugar in the marmalade'에 피쳐링[* 여명이 유진 박의 음반을 듣고 음반작업을 요청해왔으며 뮤직비디오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단순한 바이올린 연주 피쳐링을 넘어서 클라이막스 파트의 간주를 담당하며 랩퍼가 유진 박을 연신 외치며 흥까지 돋울 정도였다. 여명의 음반은 그해 홍콩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록되었다.]하여 [[마이클 잭슨]] 공연 [[https://youtu.be/zLrkYqncE9s?t=2m47s|라이브 무대에도 함께 출연]][* 1999년 [[마이클 잭슨]]의 내한 공연에 여명이 게스트로 출연하며 함께 공연하였다.]하였다. 이외에도 [[리듬게임]] [[펌프 잇 업]]에서 Yahpp이 작곡한 [[펌프 잇 업 The O.B.G. -The Season Evolution Dance Floor-]]의 [[무혼]], [[펌프 잇 업 EXCEED]]의 [[Final Audition 3 U.F. ]]에서 바이올린 세션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유진 박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음악들을 소개하였고 마치 일렉기타를 연상케하는 즉흥연주의 실력을 뽐내며 클래식과 대중음악계에 충격을 선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진 박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대한민국 음악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열린음악회가 끝나고 방송사에 유진 박에 대한 문의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클래식인 바이올린으로 락을 한 사람이다. 현재까지도 국내에서 유진 박에 비견될 만한 전자 바이올리니스트는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보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느낄 수 있다.[* 국내 전자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대부분 기존 곡에 별다른 편곡없이 커버하는 수준이고 바네사 메이나 본드 아류작일 뿐이다. 또한 자기음악을 하는 연주자는 현재까지 유진 박이 유일하다.] 클래식으로 확대해도 유진 박처럼 성공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손꼽을 정도다.[* 유진 박의 등장으로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들이 늘어났고, 1998년에는 10대들이 뽑은 문화예술인 2위에 뽑힐 정도로 단순히 바이올리니스트 그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연주뿐만 아니라 데뷔음반의 모든 곡을 유진 박이 작사, 작곡, 편곡까지 하며 천재음악가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국내에서 연주음반을 단기간에 그렇게 팔아치운 사례는 유진 박이 유일하다. 1999년 [[MBC]] FM 골든디스크에서 발표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역대 연주곡 32곡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유진 박의 자작곡인 드라마틱 펑크가 선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